용인이혼변호사 [정동칼럼]고요한 아침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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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사회 이전에 새벽은 희망과 재생 같은 추상적 가치와 연결된 우주론적 시간이자, 생명의 휴식과 활동이 전환되는 중요한 경계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매일 일어나는 작은 천지개벽의 시간이었다. 정화수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소원을 비는 절박한 시간이자, 깨어 있는 신앙을 신에게 증명하는 기도의 시간이었다. 새벽은 신성했다.
개발연대에 새벽은 국가 주도의 강력한 근대화 프로젝트와 결합하면서 ‘근면’의 시간이 되었다. 1972년에 발표된 ‘새마을 노래’의 가사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로 시작한다. 중독적인 멜로디에 담긴 저 정신은 새벽을 역사적으로는 계몽의 시간이자, 현실적으로는 집단 노동의 시간으로 바꾸었다. 일어나 노동을 시작하라는 국가적 계몽사업은 ‘잘살아보자’는 희망이 덧입혀지면서 개인과 국가 발전을 위한 신성한 집단적 의무 이행의 시간으로 새벽을 각인시켰다.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초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되어가던 한국 사회에 난데없이 ‘아침형 인간’ 개념이 등장하면서 새벽은 이제 ‘우리’ 마을을 가꾸기 위해 국가가 독려하고 주민이 반응하는 집단 노동의 시간이 아니라, 개인이 각자도생을 위해 알아서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아침형 인간’은 의지와 규율이 의심되는 다른 시간대 인간과 달리 근면·성실, 자기계발, 그리고 성공을 상징했다. 새벽은 더 이상 집단적 동원의 시간이 아니라 개인적 성취의 시간이 되었다.
새벽배송이 환기했을 뿐, 다양한 새벽 노동이 이미 존재하는 오늘날 새벽은 24시간 작동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시간대로서의 정체성을 박탈당했다. 그저 좀 일찍 일을 시작한다는 개념을 넘어 ‘시작’이라는 관념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 새벽은 개인적 규율과 성공의 시간이 아니라 마치 산타클로스의 선물 보따리를 준비하는 요정들처럼 소비자에게 보여질 필요가 없는 노동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간이 되었다.
새벽 노동은 현상도 복잡하고 해법도 마땅찮다는 의미에서 괴물이다. 새벽이라는 문화적으로, 생리학적으로 특별한 시간의 결계를 뚫고 들어온 이 괴물은 참 빨리도 성장했다. 혹시 그것이 한국인의 내면에 각인된 새벽의 이미지 때문일까? 새벽이 국가 발전, 개인적 성취로 이어지는 미덕이며 자녀와 가족을 위해 저마다의 신에게 빌던 신성한 시간이었기에 그런 것일까? 아니면 모든 시간을 균질화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체제의 쓰나미에 밀려버린 걸까? 자본주의는 생산 과정의 표준화와 정교화 과정에서 ‘시계’로 대표되는 근대적 시간을 만들어냈고, 대규모 생산 모델을 고안하면서 노동자들의 시간을 집단 동기화해 통제했다. 그리고 이제는 시간을 아예 삭제해버리고 있다.
공론장도 분열되었다.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노동 통제의 진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인간의 몸은 의학적 비명을 지르지만, 각자도생의 시대에 건강은 사치재다. 새벽배송 제한을 제안한 민주노총과 이에 반발한 쿠팡 노동조합의 시간과 입장은 다르다. 새벽에 물건을 받아야 하는 이들과 그럴 필요가 없는 이들의 삶도 다르다. 노동자와 지식인의 삶은 말할 것도 없다. 많은 이들이 사람이 할 일이 못 된다고 고백하지만, 자유시장경제 사회에서 각자의 선택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당사자주의에 어긋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이 와중에 자본은 변명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지배할 뿐이다.
새마을의 새벽종은 이제 각자 다른 시간대에 울린다. 새벽 나팔을 불던 국가는 사라졌고, 개인만 남았던 빈자리에 플랫폼이 등장했다. 쪼개진 개인들은 플랫폼을 통제할 방법을 모른다. 머잖은 미래엔 이런 논쟁의 당사자조차 사라질 것이다. 로봇은 말이 없을 테니까.
그때 새벽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 있을까. 이 모든 질주의 끝에도 여전히 사람은 지금의 모습일 텐데. 아침의 ‘나라’의 주권자들이 ‘아침’의 주권자가 될 수는 없는 풍경 속에서 미래라는 개념마저 흐릿해진다.
2035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가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2035년까지 줄여야 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하한선을 2018년 배출량의 50% 또는 53%, 상한선을 60%로 설정하면서 ‘50%대’ 감축 목표 수준을 내놨다. ‘50~60%’ 또는 ‘53~60%’의 범위로 제시됐지만 하한선이 목표 달성의 기준이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산업계와 시민사회는 모두 반발하고 있다. 산업계는 당초 48%를 주장했다. 정부안을 달성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 산업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반면 65%를 주장했던 시민사회는 이번 목표치가 기후위기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최악과 차악의 선택지만 남겼다”고 비판했다. 산업계는 온실가스 감축을 비용으로 인식하고, 시민사회는 적극적인 기후대응 없이는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맞선다.
도무지 접점을 찾을 수 없어 보이는 대립된 입장 사이에서 기후대응이라는 과제와 경제 성장을 모두 신경써야 하는 정부의 고민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도 “상반된 의견 속에 균형점을 찾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균형’이라고 했지만 ‘어정쩡한 중간’을 택하면서 결과적으로 산업계의 불만을 잠재우지도 못하고, 기후대응에 책임을 다했다는 평가도 받지 못하게 됐다.
정부가 설정한 목표치는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NDC는 한국이 국제 사회에 제출하는 공식적인 약속일 뿐만 아니라 정부의 기후대응 의지를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지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기본법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전 지구적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기여하고 미래세대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지 말아야 하며 과학·국제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고 기준도 제시했다.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매년 같은 비율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 나가더라도 2035년 감축률이 53%는 되어야 하고, 지구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파리협정 목표 달성 확률을 50% 이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61%가량 줄여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정부 목표는 기후대응에 적극적인 의지를 가졌다고 볼 수 없다. 사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그조차도 달성이 난망해 보이는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 속도다. 지금 성적이 만년 하위권인데 다음번엔 100점 맞겠다고 목표를 세우는 것이 무슨 현실성이 있겠나 싶은 공허함 같은 것 말이다.
한국은 2030 NDC를 40%로 정했었다. 2018년 7억2760만t이었던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2030년 4억3660만t까지 40% 줄이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해 총배출량은 6억3900만t으로 6년간 8860만t(12%) 줄이는 데 그쳤다. 앞선 6년간 줄인 양의 2.3배를 남은 6년간 더 줄여야 목표 달성이 가능한 수준이다.
계획표에 비해 실천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뜻인 동시에 미래 세대에 전가되는 책임이 그만큼 더해졌다는 의미가 된다. 그동안 재생에너지 전환은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안정적 공급이 어렵다’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등의 논리에 매번 힘을 쓰지 못했다. 10년 전 도입된 배출권 거래제는 가격이 낮은 데다, 그나마 무상할당 비중이 너무 높아 기업들의 감축 유인으로 작용하지 못했다.
이번 2035 NDC 발표에 산업계가 “재생에너지 등 관련 인프라가 잘 구축되지 않은 상황이라 달성이 어렵다”고 하는 것도, 지금까지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나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제자리걸음 수준에 그쳤다는 점을 고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기후 대응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지난달 출범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온실가스 감축, 재생에너지 확대, 기후재난 대응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탈탄소 녹색문명 전환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지금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할 수 없다. 언제까지 핑계를 대며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다. 최악의 산불, 극한 폭우, 기록적 폭염, 극심한 가뭄은 이제 일상이 됐다. 기후대응이 ‘어렵고, 비싸고, 안 될 것 같다’는 인식을 바꿀 계기가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 된다는 효능감, 이 방향이 맞다는 확신, 앞으로 속도를 붙일 수 있겠다는 성공의 경험을 만들 수 있도록 정부가 구체적 대책을 만들고 드라이브를 걸어야 가능하다. 이 실천에 기후부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2025년 6월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 <국보>가 관객 천만을 돌파하며 화제를 모았다. 일본 전통문화를 대표하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잊혀 가는 ‘가부키’를 소재로 한 영화는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아사히 신문에 연재된 작품은 단행본도 100만부 이상 팔리는 인기를 얻었다. 작가는 작품을 위해 가부키 극단에서 3년간 검은 옷을 입고 배우를 돕거나 소품을 옮기는 역할을 하는 ‘쿠로코’를 담당했다고 한다. 소설에서 야쿠자 가문에서 태어난 주인공 키쿠오는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가부키로 일가를 이룬 탄바야 가문에 의탁해 가부키 배우로 성장한다. 지금 사람들에게 그저 지루한 예술이 되어버린 가부키지만, 이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이들 통해 한 분야의 ‘정점’에 오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소설은 국내에서 상·하 두 권으로 나눠 출간된다. 영화도 11월 국내 개봉한다. 재일동포 이상일 감독이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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