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상품권현금화 ‘모은 돈 다 날렸습니다’···가상자산 청산 사태에 코인개미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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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발 ‘검은 금요일’로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곳이 가상자산이다. 역대 최대 규모의 청산사태가 발생하면서 가상자산은 반도체·기술주보다 더 큰 폭으로 추락했고 개인투자자의 자산도 휴지조각이 됐다. 가상자산 폭락엔 유동성 부족, 파생거래 취약성 등 구조적 문제가 컸던 만큼 시장의 불안이 언제든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중 무역갈등이 재점화된 이날 가상자산은 두 자릿 수 넘게 폭락했다. 이날 고점과 비교해 비트코인은 12.7% 추락했고 이더리움(-20.17%), XRP(리플, -37.61%), 도지코인(-40.97%) 등 알트코인(비트코인 제외한 가상자산)은 하락세가 더 가팔랐다. 같은 날 엔비디아(-4.89%), 브로드컴(-5.91%) 등 기술주보다도 낙폭이 두배 가량 컸다.
배경엔 가상자산 시장의 대규모 ‘청산’ 사태가 있다. 투자자가 고수익을 얻기 위해 레버리지(차입) 투자를 할 때 투자자가 냈던 증거금 밑으로 손실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청산이 발생한다. 가령 ‘상승’에 베팅한다고 가정할 때, 가격이 폭락해 손실이 증거금보다 커지면 거래소가 자동으로 투자자의 자산을 시장가에 팔아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투자자가 100만원을 증거금으로 ‘2배 상승’에 베팅한다고 할 때 거래소는 투자자 증거금을 담보로 100만원을 빌려줘 총 200만원 규모로 투자할 수 있게 해준다. 10%가 오르면 투자자는 20%인 20만원을 얻지만 가격이 50% 떨어지면 투자 규모가 100만원으로 줄어들어 거래소가 빌려준 금액만 갚을 수준이 된다. 거래소는 손실이 커지기 전에 자동으로 팔아버리고 투자자는 증거금을 모두 잃게 되는 구조다.
증시 등 전통적 금융시장도 레버리지 거래가 이뤄지지만, 가상자산은 전통 금융시장과 비교해 적은 유동성으로 변동성이 크다보니 작은 충격에도 레버리지 청산이 이뤄지기 쉬운 구조다.
실제로 이날 하루에만 가상자산 데이터 업체 코인글래스에 따르면 190억달러(약 27조원)의 가상자산 파생상품이 청산됐다. 청산 규모로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해외거래소를 통해 가상자산 파생상품에 투자한 국내 투자자도 무더기 손실을 입었다.
최윤영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13일 “전통 자산이 점진적 매도세를 보였다면, 가상자산은 청산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면서 하락세가 심화됐다”며 “비트코인은 기관 유동성이 방어막 역할을 했던 반면, 알트코인은 완충 장치가 부족해 낙폭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가상자산이 급락하자 상승 레버리지 등 가상자산의 파생상품이 청산되면서 매도세가 더욱 가팔라졌다는 것이다.
시장이 충격에 대응할 시간도 부족하다. 전통 금융시장은 청산 전 투자자에게 증거금을 추가로 넣으라고 요구하는 ‘마진콜’이 진행돼 시장과 투자자 모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그러나 24시간 운영되는 가상자산 시장에선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으로 청산이 이뤄지다보니 충격이 바로 시장에 퍼지게 된다. 가상자산 시장에는 20배 이상의 고 레버리지 투자가 빈번한 것도 청산의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가상자산이 10월에 강세를 보이는 효과 등을 전망하고 국내·외 투자자들이 앞다퉈 상승 레버리지 투자를 늘려온 점도 타격을 키운 요인이다.
문제는 시장충격이 커질 경우 거래소의 시스템도 불안정해지면서 투자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가상자산거래소 바이낸스는 이날 검은금요일 당시 피해를 본 투자자들에게 총 2억8300만달러(약 4000억원)를 배상했다고 밝혔다. 당시 바이낸스 시스템이 마비되자 달러와 가치가 연동돼야 하는 스테이블코인 ‘USDe’ 등이 급락세를 보이면서 투자자들이 피해를 봤다.
국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11일 가상자산거래소 빗썸에서 스테이블코인 테더의 가격은 장중 5755원까지 올랐다. 다른 스테이블코인인 USD1은 업비트에서 장중 1만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1달러 수준(1400~1500원)으로 유지돼야 하는 스테이블코인의 가격이 이상급등한 것이다. 이 경우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서도 코인빌리기 등 연계 상품으로 충격이 파급돼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이정환 한양대 교수는 “아직은 실물자산과 가상자산의 연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실물 경제로 영향이 파급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원화스테이블코인이 활성화될 경우 개인투자자가 쉽게 파생상품으로 유입될 수 있어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당분간 가상자산의 변동성이 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이 문제없이 작동하는지 모니터링이 필요한 국면”이라며 “어느 때보다 큰 변동성이 단기내에 발생했기 때문에 예상하기 어려운 경로로 여진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개혁의 길은 험하고 위태하다. 개혁 깃발이 올라가면 한 사회는 모세의 지팡이에 홍해가 열리듯 두 쪽으로 갈라진다. 개혁 대상들은 급하면 칼날이라도 움켜쥐며 저항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오죽하면 퇴계 이황이 조광조의 죽음을 보며 “현자들이 위태로울 때 경계하지 않고 너무 앞으로만 나아갔다”고 탄식했을까. 개혁하려면 늘 ‘작은 생선 굽듯(若烹小鮮)’ 사려 깊게 ‘반동’을 염려해야 한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정부·여당의 화두는 ‘3대 개혁’이었다. “추석 밥상에 검찰청 해체를 올리겠다”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전광석화 개혁론’은 그 핵심이었다. 하지만 정작 추석 민심을 흔든 건 ‘국정 위기 조짐’의 낯선 현실이다. 추석 연휴 전 한국갤럽 조사에서 이재명 정부 국정지지율은 취임후 최저(55%)를 기록하며 이제 과반 지지 수성을 걱정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재명 정부를 만든 중도층이 여당에 이어 대통령으로부터도 떠나고 있는 결과일 것이다.
민심의 윤석열 내란 청산 지지와 열광적인 당심을 받아 나선 개혁의 길인데, 이 초라함은 무엇인가.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8일 추석 민심을 두고 “내란 청산과 개혁을 담대하게 하되 조용히 추진하라는 것”이라고 성찰했다. “설치는” 여당을 못미더워하는 실제 추석 밥상 민심과 다르지 않다.
이 대통령의 ‘꼼꼼한 추진’ 당부에도 검찰에 이어 사법개혁까지 갈등하니 민심이 기이하게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대통령실이 “취지에 동의하지만, 속도나 온도에 차이가 난다”고 속도조절 바람을 비치자, 정청래 대표는 페이스북에 “상기하자, 조희대의 난, 잊지 말자, 사법개혁!”이라고 썼다. 대통령실을 면박 준 것이다. 대통령이라도 여당에 이래라 저래라 할 순 없을 테지만, 반년도 안 된 정권의 ‘따로따로’ 당정 풍경은 흔치 않다.
그리 보면 민주당의 8·3 전당대회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정 대표가 61.7%라는 압도적 득표로 당선됐을 때 여의도는 정파를 떠나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국민의힘은 “김어준이 이 대통령에게 이긴 꼴”이라고 비아냥댔지만, 읽어야 할 문맥은 그게 아니다. 당원·지지층은 온건하게 국정을 뒷받침하겠다는 이 대신 결연히 ‘적’들과 싸우겠다는 이를 선택했다. 정치의 문법이 달라졌다. 조종당하는 것은 당원·지지층이 아니라 정치권력이다. 정 대표는 기꺼이 그 역할을 자임했다.
대통령과 여당 입장이 늘 같으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실상 모든 정권의 가장 큰 숙제는 ‘지지층’이다. 권력이 상처 입는 건 외부 공격보다 내부 동요와 이반 탓이 더 크다. 그래서 내부를 단속하고 싶고, 때로 지지층을 설득해야 할 ‘진실의 순간’도 만난다. 이 몫을 여당이 감당해준다면 정권 입장에선 더 바랄 바 없다. 하지만 정 대표는 ‘대신 싸우겠다’ 했을 뿐, 오히려 당원·지지층에 더 다가갔다. ‘대신’이 꼭 ‘위해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당은 정부에 비해 더욱 시민 개개인에게 가까워야 한다. 여당도 입법부 일원으로 정권의 ‘선한 견제자’가 돼야 하는 게 정치의 원론이다. 문제는 정당이 초점을 두는 대상이다. 정당은 가치를 공유하는 이들의 집합체이면서 권력 획득이 존재이유다. 권력 목표를 보면 주파수는 민심, 특히 중도에 맞춰져야 하지만 당심은 애초 중도일 수 없다.
여당도 당심만으로 정치를 할 순 없다. 정 대표는 “당심이 민심”이라 강조하지만, 야당과 다른 점이다. 국가 운영을 맡는다는 건 그런 것이다. 야당일 때야 잘 싸우는 게 유능함이지만, 여당은 결과로 책임져야 한다.
정치는 철학일 수 있지만, 그 행위는 과학이어야 한다. ‘당대 다수 민심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어떤 선한 가치도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다. 정치의 과학은 이 ‘민심의 동의’를 확대해가는 과정이고, 숙의는 그 방법이다. 정당의 철학이 숙의를 거쳐 그 사회의 가치가 될 때 정치 과정은 하나의 미학이 된다. 오늘날 정치에 아름다움이 부족한 건 이런 과정이 부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청래 민주당이 알았으면 한다. 정당의 철학이 과학적 정치 행위를 통해 민심에 조응할 때 정당의 최종 목표는 완성된다. 그렇지 못한 정당은 극우에 휘둘리는 국민의힘처럼 그저 당심의 메가폰에 머물게 된다. 승자 권력의 유효기간도 그리 길지 않다. 승자가 오만하기만 하고 무능하면 유효기간은 더욱 졸아든다. 적폐청산으로만 내달린 8년 전 민주당 정부가 그랬듯, 지금 민주당도 과도한 뜨거움으로, 그저 강함으로만 내달리고 있지는 않은가. 민주당이 ‘오만한 무능’의 함정에 빠져 있는 건 아니길 바란다.
허위 조작 정보로부터 어떻게 공론장을 지킬 것인가. 이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한 것은 분명하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회적 토론과 숙의가 점점 위축되고, 의견과 입장이 다르면 타협과 대화는커녕 상대를 악마화하는 현상이 날로 뚜렷해진다. 그러한 분열과 대립을 가져오는 주요 통로가 허위 조작 정보라는 진단도 적절하다.
하지만 규제의 허점을 파고드는 유튜브나 소셜미디어 등을 법으로 다 막기에는 버겁다. 아무리 청결하게 유지한다 해도 완전히 근절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우리는 무균 상태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어떤 정보가 공론장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발효시키는 효모인지 아니면 부패시키는 독성 세균인지 구분조차 애매한 경우가 많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언론 규제는 어떤 면에서는 방어적이다. 조작되거나 유해한 정보의 위험으로부터 공론장과 시민을 보호한다는 접근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위험하거나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할 경우에만 규제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상의 자유시장 개념에 뿌리가 닿아 있다. 다양한 의견이 표현되고 사회적으로 토론되면서 경쟁하면 진실은 마침내 드러나고 민주주의가 실현된다는 가설이다.
사상의 자유시장 개념은 비판적 사유 능력과 의식을 지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시민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오히려 인류사회가 추구해온 인권과 공동체적 가치는 퇴행하고 이성의 힘도 약화하는 조짐이 뚜렷하다. 이기적 감성과 분노가 지배하는 사회로 나아간다는 우려가 크다. 그러다 보니 공론장의 작동이 삐걱거린다. 공론의 수준과 폭은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와 더불어 참여하는 시민의 리터러시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 공론장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정보를 소화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능력이 없다면 표현의 자유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다. 시민의 정보에 대한 이해력과 미디어 근력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가 민주주의의 중심 의제가 되는 이유다.
특히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현혹 정보가 더욱 교묘해지는 만큼 미디어 리터러시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단순히 거짓, 증오, 편견뿐만 아니라 부실한 맥락과 근거로 제목 등을 선정적으로 포장해 감정적 자극을 이끌어내는 숱한 정보들도 가려내는 능력까지 포괄한다. 전달된 정보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맥락을 이해해 진실을 찾아내는 역량이기도 하다.
유네스코는 해마다 10월 마지막 주를 글로벌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주간으로 정해 포럼을 열고 다양한 캠페인을 벌인다. 또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미디어 리터러시를 민주시민 교육의 핵심 요소로 지정해 국가 차원에서 오랫동안 노력을 기울여왔다. 우리나라도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 시청자미디어재단 등 여러 기관에서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기관 간의 역할 분담이나 상호 협력 등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법안이 국회에서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정권이 불편해하는 가짜뉴스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에는 그토록 진심이었던 정부나 집권당도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치권은 오히려 그러한 편향적 정보에 편승해 팬덤을 부추기고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 하는 것 아닌가 의심마저 들기도 한다.
공론장에서 시민은 단순히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사고하는 민주적 역량을 지닌 구성원이다. 공론장에 주체로 참여하는 것은 시민권을 강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허위 정보에 대한 방어적 규제를 넘어서 미디어 리터러시를 강화해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공론의 마당을 만들어가는 적극적 정책으로의 확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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